미대를 나온 동료가 개업을 했다. 나이가 어리고 직급이 낮았지만, 같이 일했던 분야에서는 나보다 경력이 앞섰고, 나는 중요한 판단을 하기 전에 항상 그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일에 있어서는 합리적이고 도전적이었다. 내가 꺼렸던 적자 사업장도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첫해에 적자가 나도 가꾸고 일으켜서 그 후에 흑자로 돌리겠다고 나를 설득했다. 결국 내키지 않았지만 그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회사를 떠날 즈음에 그도 그만 두었지 싶다. 정확히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전에 직무 중에 세상을 등진 동료에 대한 엇비슷한 기억으로 오랫만에 목소리를 들었다. 얼마전 그는 자신의 아이 이름을 딴 식당을 차렸다. 보고 싶던 그 얼굴을 보고 왔다. 그가 만들어준 마지막 국물을 들이키는데, 그릇 너머로 그가 적어 놓은 발자크의 말이 보였다. 모든 인간의 능력은 시간과 인내의 복합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