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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겨울 배웅하고, ...

뮐러의 詩에 曲을 붙인 노래들을 슈베르트는 Winterreise라고 했다. 그 노래들은, 이방인으로 왔다가 이방인으로 야밤에 떠난다는 서글픈 넋두리로 시작한다. 계절처럼 이리왔다 그리가는 이가어디 그혼자뿐 이겠나만 ....
  • 삶이란, 그 종착역만 분명한 방랑 같은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냇물에 떨어진 가랑잎이, 자신의 의지로 바다까지 가겠다고 믿어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번잡하고 고단한 일상들 가운데서도 안식을 주는 것이 훌쩍 떠나는 여행이다. 그것도 겨울에 조금이라도 따뜻한 바닷가로 발길을 돌리면 더욱 좋고 .... 올해도 그렇게 여행을 다녀왔다. 하늘은 아직 겨울빛이 가득한데, 흙은 붉게 녹아서 마늘빛으로 푸르르다. 봄은 땅에서 온다더니 ... 여로는 동해를 끼고 내려갈 수도 있지만 마음이 번잡하다. 그래서 가는 길에 공주와 부여를 보고, 서천에 잠자리를 정하고 부안을 다녀오고, 귀로에 천리포를 들리기로 했다. 
  • 공주는 편안하다. 볼거리도 그러하고 먹거리도 그러하다. 儉而不陋 華而不侈,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다더니 ... 공주와 부여는 늘 그렇게 다가온다. 매서운 바람과 앙칼진 한기를 피하려 박물관에 들렸지만, 올해는 그러지 않았다. 평소에도 백강변으로 공산성을 돌았지만, 올해는 또 그러하지 않았다. 부여족의 산성은 겹겹이 쌓인 세월에도 여전히 매섭고 앙칼지다. 겨울볕을 밟으며 가파르게 날선 城을 남쪽으로 돌았다. 토끼와 청솔모 그리고 딱따구리까지 산짐승들이 산보객보다 많지 싶다. 게다가 다람쥐까지 잠을 깨고 나왔으니 마음만 봄이 아니지 싶기도 하다. 국밥집에서 요기를 하고 부여에 들려서 간식거리를 챙겼다. 이번에는 제과점에 들려서 제각기 입맛에 맞추었다. 
  • 다시 남쪽으로 길을 달려서 서천에 들었다. 국립생태원, 회사를 자신있게 그만두고 국립기관에서 사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시험을 보았던 곳. 어렵지 않은 필기 시험에 붙어서 면접에 갔었다. 누가 여기 시험 보라고 했냐길레 자의지로 보았다고 했던 .... 만약 최종 합격 했으면, 아마도 삶의 터전을 이곳으로 옮겼겠지만 인연은 거기까지 였지 싶다. 당시 면접 전날에 생태원을 관람했던 것과 같은 코스를 운영자의 입장으로 걸었다. 충청도 사투리가 입에 감기게 했던 열대관부터 많이 안정된 느낌이 들었다. 평일인데도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이 계속 꾸준하게 밀려 들어왔다. 습한 공기와 후끈한 열기가 주는 묵언의 그 무엇이 어수룩한 관람객의 외투를 몽땅 벗긴다. ....  살다보면, 틀림없이 곰인데 지가 여우인 줄 알고 사는 영혼과 여우인데 곰인척하고 사는 영혼이 있다. 名可名 非常名이라고 했다. 생긴 것은 분명히 갯과인데, 하는 짓은 고양이과인 사막여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프레리독은 다람쥐과인데도 개(dog)라고 우긴 이가 대세였지 싶다. 해맑은 영혼들에게 애나 어른이나 마카 발목이 잡혀서 움직이질 못한다. 여기까지 아이들의 중간 평가는 해외나 국내의 어지간한 관람시설보다 훨씬 낫다는게 합치된 의견이다. 다르다는 존재 이유, 그 자체로 서로에게 위안을 준다. 손톱만한 같음으로 패거리 짓는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항상 잘못을 가르치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https://photos.app.goo.gl/VB2hWyCCNvnWWaQD8
  • 겨울은 역시 冬柏이다. 동백은 홑겹으로 붉을수록 제맛이고, 떨어져야 비로소 아름답다. 추잡하게 시들어서 말라 비틀어지도록 매달려 있지 않고 ... 펭귄舍는 여느 수족관과 비슷한 구조를 가졌다. 하지만 팽귄이 관람객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관람창을 편광 유리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안내와 해설하는 분들도 관람객이 물어보면 그제서야 권위있고 상세한 답을 해준다. 다른 이들에게 방해되도록 하지 않는다. 금구리의 갈대숲을 지나오면서 굳이 내가 없어도 잘하고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너무 넓어서 나처럼 걸음이 불편한 이들은 관람이 힘들고, 상업시설이 빈약한 정도가 아쉬웠다. 
  • 이튿날은 모두가 늦잠을 잤다. 전날의 여독도 풀고, 일탈이 주는 달콤함을 만끽했다. 인간은 언제나 善과 惡을 구분짓지만,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 식민지의 지식인 채만식은 그의 소설 濁流에서 비단물결 넘실대던 아름다운 錦江이 모여 들었는데 결국 남은 것은 흙탕물이라고 한탄을 했다. 그 곳으로 갔다. ...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黃海)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 市街地)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 겨울 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내소사인데, 이번에는 빠졌다. 철새의 飛行을 봐야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아쉽지만 그러기로 했다. 부안에서 점심을 먹고, 한적한 시장을 호젓하게 구경했다. 그리고 곰소부터 격포를 지나 새만금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 북상했다. 그 와중에서 아이들은 가창오리 비행을 볼 수 있는 탐조 명소를 검색했다. 철새들의 비행은 해질 무렵에 맞추어져 있는데, 길어야 30분이고 채 5분도 않되어 끝날 수도 있다고 했다. 못 볼 수도 있다. 저녁해가 뉘엇하는데, 세곳이 넘는 탐조대를 뒤졌다. 새떼는 없고 탐조대만 덩그러니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찾은 곳은 논길 끝이다. 일단 들어가면 후진으로 나와야하는 농로의 끝에서 가창오리를 보았다는 블로그를 찾았다. 일단 강을 메우고 오리떼가 떠있었다. 그리고 지루한 기다림이 계속 이어졌다. 나라면 흔들리는 강물 위에서 밤을 지새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언제 떠오를지는 모르니 말이다. 차로 들락거리면서 몸을 녹이던 중에 한두마리씩 날아오르던 새들이 한덩이가 되었다가 다시 흩어졌다가 모이기를 반복하면서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가 종국에는 땅으로 스미었다. 백제의 전성기인 성왕 때의 예인 味摩之가 추었다는 비조무(飛鳥舞)의 춤사위가 바로 저러했지 싶었다. 이번 여행 중에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오래갈 듯 싶다.
  • 지금까지 살다가 보면 내주변에는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확실한 사깃군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단정했다. 그런데 평생을 돈을 쓰는 방법을 궁리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밀러 선생이다. 이것이 내가 천리포를 가는 유일한 이유이다. 이틀동안 머물렀던 숙소를 떠나서 향한 곳은 천리포이다. 서산을 지나서 갔다. 해변부터 가볼 요량으로 관람방향을 거슬러 돌았다. 해변 출입구를 폐쇄해 놓았다. 인간세상이 그렇다. 갈등과 반목이 없으면 너무 밋밋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가경일수록 홍진의 탐욕이 넘쳐나는 듯 해서 씁쓸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이 시기에 천리포는 희귀한 꽃들로 넘쳐난다. 모두가 밀러 선생 덕분이다. 스노우드롭에 머물렀던 발걸음을 재촉하여 온실로 향하였다. 보호중인 동백꽃들을 전시중이다. 주로 흰꽃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멸종위기종이다. 노각꽃과 유사하고 향기도 그러하다. 같은 차科이니 그러려니 싶다. 남들이 1분도 안되어 나가는 온실에서 한참을 있다가 나왔다. 영춘화길을 지나면 복수초밭과 臘梅가 있다. 꽃은 나무에 가득하고 향기는 사방에 지천이다. 겨울에 봄이고, 인간에 극락이다. 그게 밀러 선생의 천리포이다. 납매 위로 오르면 하얀 매화와 노랗고 자줏빛으로 피는 풍년화가 있다. 나무에 피인 꽃에 취해서 밟은 것이 땅에서 오르는 스노우드롭과 크로커스이다. 세상을 살면서 불망할 것이 照顧脚下이다. 천리포는 목련꽃 피는 4월이 제일 좋다고 한다. 그래서 봄이 아닌 겨울에 찾는다. 한갓지고 호젓하게 말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밀러 선생의 뜻을 잘 보듬어 지키기를 바란다. 
  • 순박한 이방인이 터를 잡고 위태롭게 꾸려가던 국수집이 결국은 문을 닫았다. 요기를 하고 길을 떠나려고 했는데 낭패다. 주문을 채근하는 야박한 현지인 가게에서 국수를 시켰다. 식어빠진 국물을 몇 국자를 더 건져먹고 가게앞 해변을 걸었다. 국수값 뽑으려고 부러 한참을 걸었다. 덕분에 귀로는 많이 막혔다. 
  • 가는 겨울을 배웅하러 나왔다가 이렇듯이 오는 봄까지 마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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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hotos.app.goo.gl/NqxG9wuq4KxzqmM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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